한참의 시간을 들여 그저 고집스럽게 응시하고 있던 아사는 한걸음 내딛으며 냉혹하게 말했을 뿐이다.- 이제 내가 살아가기 위해 네가 필요하지 않으니까.그것으로 아사는 카스란과의 인연을 모두 잘라내었다.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너무나도 단호하게최전선이 점점 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엘리온 최남단에서 시작된 항쟁군의 움직임이 가속되어 엘리온을 전부 수복한 후 파스하를 거슬러 올라 로아까지 올라갔다는 건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었다.결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 소리 높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엘리온 항쟁군은 그것이 얼마나 얕은 견해인가를 알려주기라도 할 듯 로아의 침략군을 엘리온의 땅에서 밀어내었다. 그것도 로아의 침략을 받은 지 약 삼년만에.그러나 문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분명 엘리온의 국내사정은, 침략을 당한 나라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몇몇 도시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전쟁의폐해를 우습게 볼 수 없었던 것인지, 특히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라 셀레니아의 완전 초토화 때문에 '상 엘리온'은 그야말로 마비 상태에서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고, '하 엘리온'은 엘리온 군과 로아 군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져 있었다.일단 국토의 정비가 시급한 문제라 엘리온 수뇌부에서는 일단 휴전을 요청하려 했으나, 로아가 휴전협정을 묵살하였다.그것도 협정을 하러 간 사자(使者)의 목을 쳐 상자에 넣어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완벽하게."…로아는 전쟁을 계속하자는 겁니다."그다지 넓지 않은 회의실에 살얼음판 같은 침묵이 흘렀다.불안해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좌중의 호응에 뮤엔은 어깨를 으쓱했다."아니면 사신으로 보낸 자의 목을 쳐서 깨끗하게 닦아 상자에 넣어 보낼이유가 없죠.""뮤엔 레아 드라얀, 말을 가리시오."세렌의 낮은 경고에 뮤엔은 그제서야 입가에 짓고 있던 빈정거리는 미소를지웠다. 불안을 무의식적으로 누르고 싶었던 것인지 뮤엔의 얼굴은 만들어낸 것처럼 딱딱하게 변했다."같이 죽자는 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알아본 바로는 로아의 내정도그다지 완만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신왕 아나카산이 라시칸 나이츠의 수장, 피아네스 한 프란을 감금하는 바람에 라시칸 나이츠가 반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관의 목이 걸려있으니 라시칸 나이츠의 반발은 그정도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신왕 아나카산이 라시칸 나이츠의 수장의 목을 잡고 라시칸 나이츠를 출전시킨다면 현재, 엘리온이 그들을 이길확률은 없습니다."꽤나 암울한 결론을 경쾌하게 내리며 뮤엔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원래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세렌조차 난감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유독 중앙에 앉은 카스란만이 무표정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